[세상사는 이야기]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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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의 생리적 기전과 약물반응
같은 사람이라도 어른과 달라
품절·생산중단 소아약 많아져
필수의료 소아과 고충 가중
작지만 해결해주면 큰 도움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은 소아과학의 교과서에 적혀 있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나는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아주 좋아해 병원 연구실에도 액자에 담아 놔두었다. 이 구절은 소아가 어른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른과 동일한 생리적 기전으로 움직이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뜻하며, 또 소아의 체중이나 키가 어른보다 작다고 해서 그 작은 비율만큼 투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신생아들은 일반적인 소아와는 더욱 다른데 대학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 근무 시절에는 항상 신생아들에게 주는 수액을 소수점 단위의 ㏄까지 계산해 가며 치료를 했다. 그래서 이렇게 교육을 받았기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어찌 보면 작은 숫자에도 민감한 듯 반응하고 꼼꼼하게 아이들의 상태를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소아약이 품절됐다는 이야기가 많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예년과 다르게 아이들의 약을 처방하기가 힘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약의 처방코드를 신설하고 삭제해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약국에서는 대체조제를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 옆에 기록해놓는 것이 따로 있다. 딸기맛 좋아함, 가루약 못 먹음, 하얀색 시럽 싫어함, 씹어 먹는 약 잘 먹음, 이런 식으로. 약들이 성분이 같으면 거의 똑같다고 하지만 실제 아이들은 성분이 같아도 상품명이 다른 약을 같은 약이라고 주면 금방 알아챈다. 꼭 제네릭 약의 효과와 효능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원래 환자들에게는 투약 순응도라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내가 처방을 했는데 환자가 복약 설명과는 별개로 본인의 선호도에 따라 잘 먹을 수도 있고 먹기 힘들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나 아이들 약의 제형은 다양한 경우가 많다. 요즘같이 소아약이 품절되거나 생산 중단된 게 많을 땐 하루하루 새로운 약들에 적응하고 바꾸느라 아이들의 선호도나 먹는 순응도까지 생각할 수가 없다 보니 이러한 아이들을 위한 나의 노력이 소용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이런 단순한 증상에 따른 약 외에 천식이나 경련 환아들같이 중등증 질환이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약이 종종 없다는 것도 큰 문제 중 하나다.

사실 소아약은 아이들에게 실험을 해볼 수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 성인에게서 안정성이 확인된 약에 한해 소아에게도 투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약이 있기보다는 성인 약의 용량을 조절해 복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약들을 소아과 의사들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쓰기 위해 아이들의 가루약이나 시럽을 0.33g이라든가 0.5㏄라든가 이런 작은 용량으로 처방하기도 한다. 아마 성인들에게 이런 작은 용량의 먹는 약을 주면 혀에만 닿고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요즘 필수의료라든지 저출산의 얘기들 중에서는 항상 소아청소년과의 문제와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들은 이런 자그마한 부분에서 더욱 크게 느껴질 것으로 생각된다. 소아청소년과가 필수의료라고 한다면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위해 약 처방을 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의사들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진료에 열심히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의사들의 불편함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료를 보러 오는 아이들에게 다시금 딸기맛 시럽을 처방해주고 싶은 것이 오늘도 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소아과 의사의 마음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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